한재당


  • 트위터(sns)바로가기
  • 페이스북(sns)바로가기
  • 프린트
문화와 전통의 도시 생태가 어우러진 관광휴양 도시

한재당

  • 한재당1
    한재당1
  • 한재당2
    한재당2
  • 한재당3
    한재당3
  • 한재당3
    한재당3

작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분류 : 지방기념물 제47호 (1975. 9. 5 지정)
  • 소재지 :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224
  • 시대 : 조선

    한재당(寒齋堂)은 조선중기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28세의 나이로 화를 입은 이목(李穆) 선생의 위패를 봉인한 사당으로 1849년에 건립된 구사당과 1974년에 건립한 신사당이 있다 구사당은 맞배지붕 목조와가로 정면3칸, 측면2칸이며 일주문과 담장이 둘러 있었으나 신사당 건립으로 인해 현재는 담장만 남아있다. 신축사당은 건평 12평의 콘크리트 건물에 위패를 봉안(奉安)하고 숙종43년(1717)과 경종2년(1722)에 추증(追贈)한 교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선생은 성종2년(1471)에 출생하여 일찍이 점필제(點畢齊), 김종직(金宗直)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연산군 1년(1495) 문과에 급제하였다. 간사한 노정승 윤필상이 대비를 따라 불 를 받드는 것이 좋다고 성종에게 청했는데 선생이 유생을 거느리고 소를 올려 윤필상(尹弼商)의 간사함을 논박하고 악귀같은 윤필상을 죽이기를 청하였다.
    성종이 크게 노(怒)하여 선생에게 묻기를 "네가 나의 대신을 악귀라 하느냐"하니 선생이 "그의 행동을 사람이 알지 못하니 귀신이라 하였다"고 대답하였다. 왕이 그를 사형에 처하려고 하였으나 다른 대신들의 만류(挽留)로 공주에 귀양보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때부터 바른말 잘하기로 이름이 났다.
    연산군때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으로 종학사회(宗學司澮)를 겸했다가 연안도평사로 나갔다.
    연산군 4년(1498)에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윤필상의 모함을 받아 김일손(金馹孫), 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사형을 받았다.
    형장에 나갈 때 조금도 안색이 변하지 않고 스스로 절명의 시를 짓고 죽었다. 공주에 귀양갔던 인연으로 충현서원(忠賢書院)을 세워 제사하였다
    한편 선생은 학문을 하는 여가에 차(茶)를 기호품으로 애용해 우리나라 최초의 차(茶)관련 문장인 「다부(茶賻)」가 선생의 저서에서 발견되어 선생을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선생의 「다부」를 높이 평가하여 선생을 다부(茶父) 또는 다선(茶仙)이라 추앙하고 해마다 한재당을 찾아 헌다례(獻茶禮) 행사를 하고 있다.

교통안내

대중교통 : 마을버스 24번

현지정보

주변관광지 : 애기봉, 다도박물관, 태산패밀리파크

찾아오시는 길

담당부서,문의,최종수정일,컨텐츠 만족도를 나타낸 표

담당부서 문화예술과문화재팀 문의 031-980-2483 최종수정일 2014-03-24
현재 페이지의 콘텐츠 안내 및 정보 제공에 만족하시나요?

Quick Menu

  • 민원상담
  • 민원처리공개
  • 여권발급
  • 민원편람/서식
  • 민원FAQ
  • 민원24
  • 재정공시
  • 교통정보
  • 문화/관광
  • 직원검색
  • 공영주차장 현황
  • 공동주택현황
  • 오늘의 언론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