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원 신도비


  • 트위터(sns)바로가기
  • 페이스북(sns)바로가기
  • 프린트
문화와 전통의 도시 생태가 어우러진 관광휴양 도시

심연원 신도비

  • 심연원 신도비1
    심연원 신도비1
  • 심연원 신도비2
    심연원 신도비2
  • 심연원 신도비3
    심연원 신도비3

작은 이미지를 클릭하면 큰 사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분류 : 지방유형문화재 제146호 (1992.12.31 지정)
  • 소재지 :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58-12
  • 소재지 : 조선

    심연원(1491~1558)은 조선시대 중종(中宗), 명종(明宗)때의 문신으로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 본관은 청송(靑松)이다.
    영의정 회(澮)의 증손, 사인(舍人), 순문(順門)의 아들이 태어나 김안국(金安國)의 문하에서 수학(修學)했다.
    중종11년(1516)생원, 중종17년(1522),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承文院) 정자(正字)를 거쳐 예문관 검열(檢閱), 대교(待敎), 봉교(奉敎)등을 역임했다.
    이후 사헌부 감찰(監察)과 공조, 예조, 이조의 좌랑(佐郞)을 지내고, 중종21년(1526) 문과중시(文科重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중종26년(1531) 검상(檢詳), 사복시(司僕侍) 부정(副正)을 거쳐 진휼 경차관(敬差官)으로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중종28년(1533) 의주 부윤(府尹), 1537년 동부승지(同副承旨), 2년뒤 예조참판으로 진향사(進香使)가 되어 명(明)나라에 다녀왔다.
    이어서 병조참의(兵曹參議), 대사간을 거쳐 1541년 대사성(大司成), 특진관(特進官), 형조참판(刑曹參判), 중종38년(1543)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이듬해 호조(戶曹)참판을 지낸 뒤 인종(仁宗)1년(1545) 호조판서로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에 녹훈(錄勳), 청성군(靑城君)에 피봉된 뒤 감춘추관사(監春秋館事)가 되어 '인종실록‘편찬에 참여했다.
    명종2년(1537) 좌참찬, 예조판서, 우찬성, 판의금부사, 좌찬성을 거쳐 우의정, 명조6년(1551) 영의정이 되었으며, 청성부원군에 진봉되었다. 명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명종15년(156) 4월에 건립된 신도비는 이수와 비신(碑身), 귀부(龜趺)로 이루어져 있는데, 귀부 밑에는 다시 지대석에 놓여져 있다.
    대리석 비신의 비문은 정사룡(鄭士龍)이 쓰고 송인(宋寅)이 글씨를, 지전(池銓)이 전액을 했다.

찾아오시는 길
  • 주소 : 김포시 통진읍 옹정리 58-12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제1유형(출처표시)
위 기사는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담당부서,문의,최종수정일,컨텐츠 만족도를 나타낸 표

담당부서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문의 031-980-2485 최종수정일 2018-11-28
현재 페이지의 콘텐츠 안내 및 정보 제공에 만족하시나요?

Quick Menu

  • 민원상담
  • 민원처리공개
  • 여권발급
  • 민원편람/서식
  • 민원FAQ
  • 민원24
  • 재정공시
  • 교통정보
  • 문화/관광
  • 직원검색
  • 공영주차장 현황
  • 공동주택현황
  • 오늘의 언론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