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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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전통의 도시 생태가 어우러진 관광휴양 도시

가현산

  • 가현산 전경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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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현산 전경사진2
    가현산 전경사진2
  • 가현산 일몰사진1
    가현산 일몰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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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현산 일몰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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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명칭

고려시대부터 산의 형세가 코끼리 머리와 같이 생겼다하여 상두산(象頭山)이라고 불려오다가 칡이 번성하다 하여 갈현산(葛峴山)이라고도 불렀다.
이 산에서 서쪽 바다의 석양낙조와 황포 돛대가 어울리는 경관을 거문고 등을 타고 노래를 부르면서 감상하였다 하여 가현산(歌絃山)이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 이산 서쪽 해안일대에 많이 나는 약쑥을 중국과 물물교환하는 무역이 활발하게 되자 이산 밑에 주막집이 번창케되어 가무를 즐기게 된 것이 산의 명칭이 변하게 된 사유라고도 전해 오기도 한다. 가현산의 현(絃)자를 풍류줄 현(絃) 혹은 거문고탈 현(絃)자가 아닌 솔귀 현(鉉)자를 잘못 쓰는 사람도 있다.

산맥의 형성

이 산은 수원의 광교산의 일맥이 광주 오봉산을 거쳐 부평 계양산에 다다르고 계양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맥이 이곳에 이은 후 이어서 대곶면 약산과 수안산 거쳐 몇 개의 섬을 남기고 강화도의 원 맥이 되었으며 이어서 일맥은 문수산을 형성하였다.
이 산 정상에서는 김포평야의 젖줄인 한강의 대부분과 임진강 하류와 그 넘어 개성 송악산 그리고 인천공항 고속도로, 연륙교 등을 조망할 수 있는 명산이다.

사찰

이 산에는 옛적 남쪽 기슭에 망해사(望海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건립과 철폐는 알 수 없으나 빈대가 많아 불태웠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나 그 절터는 알 수 없으며 이 절에서 서쪽바다를 바라보는 경치는 금릉팔경승(金陵八景勝) 중에서 으뜸이라는 역사기록이 있으며 낙조를 읊은 시 수편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선사시대와 유물

마산리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에 청황색의 구리광산이 있었기 때문에 김포지역의 청동기 문화 발달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고, 그 경에 선사유적이며 부족장의 묘인 지석묘가 10여 기가 있는 역사의 고장이나,현재 지석묘는 우리의 무관심과 군부대 진지공사 등으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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