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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전통의 도시 생태가 어우러진 관광휴양 도시
보리피리 시인 한하운, 김포에 잠들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故鄕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靑山
어린때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人寰의 거리
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한하운. 「보리피리」전문 -

한하운(韓何雲, 본명 태영. 1920.3.20~1975.2.28)
  • 1920년 : 함경남도 함주 출생
  • 1932년 : 함흥제일공립보통학교 졸업
  • 1937년 : 이리농림학교 졸업
  • 1939년 : 동경 세이케이고등학교 2년 수료
  • 1944년 : 북경대학 농학원 졸업함경남도 도청 축산과 근무
  • 1945년 : 한센씨병(나병)악화로 관직 사퇴 후 서점 경영
  • 1949년 : 신천지』4월호에 「전라도길」발표 후 창작활동
    시작, 첫시집 『한하운시초』펴냄
  • 1953년 : 대한한센연맹위원회장 취임
  • 1955년 : 두 번째 시집 『보리피리』펴냄
  • 1956년 : 한하운시전집』펴냄
  • 1957년 : 자서전 『나의 슬픈 반생기』펴냄
  • 1960년 : 자작시 해설집 『황톳길』펴냄
  • 1966년 : 정본 한하운시집펴냄
  • 1975년 : 김포시 (재)김포공원에 안장
천형(天形)의 삶, 그리고 문학

나병 환자로서의 비통과 울분을 ‘보리피리’ 라는 시의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고향과 봄 언덕으로 승화시켰던 시인 한하운이 김포의 품에 잠들어 있다.
문둥병에 걸려 고향과 가족을 등지고 떠돌아 다녀야 했던 한하운은 그의 한센씨병(나병)을 천형(天刑)이라고 했다. 힘없이 뜯겨지고 떨어져나가는 살과 뼈가 하늘에서 내린 죄라고 인정하면서도 온전한 몸에 대한 재생의 희망을 놓지 않고 땅에 묻는 시인의 마음.

조각조각 부서지는 일상일지라도 그 작은 조각들을 이어 붙여 온전한 몸이 되기를 꿈꾸는 시인의 바람.

그래서 한하운의 시에는 고통과 절망이 뒤섞여 있음에도 거부할 수 없는 삶에의 긍정이 있으며,
그러한 긍정은 잔잔한 눈물과 함께 그를 받아들이게 한다.

현대 시인 100명이 추천한 한국인의 애송시 100편에 드는 시 중의 하나가 바로 한하운의 「보리피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그만큼 꺼내어 부르는 이유 중의 하나는 보리피리 소리로 재생되는 원형(原型)의 삶 하나일 수도 있겠다.

망향의 마음을 안고 김포에 묻히다
한하운에게 고향으로 가는 것은 뜨겁다고 했다. 또한 법조문보다 자유로운 길이라고도 했다. (한하운. 「귀향」)

휴전선으로 인해 뜨겁고 자유로운 귀향의 길을 가지 못한 시인은 어떻게 김포에 묻히게 되었을까?

함경남도 함주가 고향인 시인은 고향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부르는 정겨운 소리가 있고, 법조문이라는 천형(天刑)의 굴레가 필요없는 고향을 향한 마음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함주가 상대적으로 가까운 김포시 (재)김포공원에 지난 1975년 안장되게 된 것이다.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그의 묘지를 찾으면 양지바른 곳에서 들려오는 푸른 고향의 피리소리를 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 김포공원 위치 :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5 (풍무동)
  • 관리사무소 : 031-984-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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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문화예술과 관광팀 문의 031-980-2481 최종수정일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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